본문 바로가기
Cul-Life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by 기시군 2026. 7. 27.

✔️
#깨끗한죽음이라는환상 박혜윤 신성준 최은경 #아몬드

🪦
죽음에 관심이 많다. 두렵지도 않다. 두려운 건 그 과정의 고통뿐이다. 조금 이르게, '존엄하지 못한 꼴'로 돌아가신 부친을 곁에서 지킨 뒤로 내 죽음의 설계는 명쾌해졌다. 스위스행 여비와 조력사망 기관에 낼 기부금을 마련해 두고, 고통이 나를 삼키거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 떠난다. 혼자, 깨끗하게, 내 손으로.

그런데 이 책의 제목,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이라니. 어쩌자는 건지. 😅

🪦
먼저 알고 지나가야 할 것들만 짚는다.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각자 숙고할 몫이다.

연명의료 중단은 이미 시작된 죽어가는 과정을 늘리지 않겠다는 결정이고, 우리나라도 시행 중이다. 조력임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일로 의사나 자원봉사자가 마련한 약물·장치를 환자 본인이 작동시킨다(스위스, 캐나다, 미국 14주 등 시행).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투약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책의 문장을 빌리면, ‘ 연명의료 중단은 이미 시작된 죽어가는 과정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반면 조력임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p126 ‘ 

🪦
책은 '존엄사'라는 이쁜 이름으로 문제를 덮지 말라고 한다. 치료 거부권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호스피스는 부족하며, 완화의료는 거의 없는 사회. 그 위에서 성급히 허용된 조력임종은 선택지가 없는 약자들을 '자발적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죽음에 밀어 넣을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살 자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안전한 죽음"(p269)이라는 문장에서 내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명쾌하다'라고 믿었던 그 설계, 그건 나의 죽음을 통제 가능한 실무로, 혼자 완결하는 프로젝트로 다룬 것이었다. 한국이 죽음마저 각자도생으로 떠넘기는 사회라고 이 책을 읽으며 공감했는데, 따지고 보니 정작 내 죽음도 각자도생이었다. 

🪦
예상밖의 사실도 알게되었다. 스위스까지 동행한 가족이나 친구는 '자살방조죄'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책 속 문장 하나에 떠올랐다. "삶은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p73) 이어진다는 문장.

간단하게 넘어갈 부분이 아니다. 

🪦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죽음’에 대한 실용서였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잊지 말라는 지침서로 보이기도 한다. 

스위스 기관들의 역사와 시스템을 알려준 만큼, 내가 외면해 온 질문도 돌려줬다. 임종기와 말기는 나눌 수 있는가, 어디까지 고통스러워야 조력임종이 정당한가,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는 루게릭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어디에 놓이는가. 답은 아직 없다. 

사실, 타국으로 도망치듯 떠나기보다, 좋았던 사람들과 이 땅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죽음을 바란다. 그러려면 내 결심보다 먼저, 이곳의 완화의료와 우리에게 맞는 조력임종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 죽음은 혼자 맞이하지만, 끝내 혼자서만 푸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 한줄감상 : 조력임종이라는 적극적 죽음 선택을 두고 깊은 숙의를 청하는 책. 그리고 '깨끗한 죽음'을 준비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 들이대는 묵직한 질문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아니, 이번엔 영화다.  ‘플랜75’ 75세가 되면 '편하게' 안락사를 택할 수 있는 가상의 일본. 한 할머니의 마지막을 통해, 안전하고 깨끗한 죽음이라는 제도가 누구를 향해 열리는지 되묻는다.

p27 “ 연명의료 중단은 넓은 의미에서는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나,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 

p46 “ 환자에게는 끝까지 치료에 매달려야 한다는 압력이, 가족에게는 끝까지 살려야 한다는 도덕적 부담이, 의료진에게는 최신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대가 작동한다. “ 

p99 “ 2024년 기준 기대수명은 83.7세, 건강수명은 65.5세로 평균적으로 약 18년을 아픈 상태로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 “

p126 “ 연명의료 중단은 이미 시작된 죽어가는 과정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반면 조력임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 

p215 “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 약 25퍼센트는 말기 질환자가 아니라, 고령이거나 삶에 지쳐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 

p248 “ 어떤 죽음이 바람직한지 충분히 숙고하기도 전에, 조력임종이 빠르게 도입되고 확산될 수 있는 환경 앞에 우리는 서 있다. “

p252 “ 조력사가 현대인의 사회적 고통을 해소할 출구이자 새로운 형태의 죽음에 대한 욕망으로 치환되고 있는 셈이 아닌가 “ 

p260 “ 한국의 논의는 이러한 ‘돌봄의 부재’라는 조건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

p262 “ 중년 세대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는 부모 세대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 기간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선택하고 싶다는 심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

p267 “ 한국 의료에서 환자의 ‘고통’ 자체가 중심 주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의료의 중심은 빠른 진단과 정확한 치료, 그리고 생명 연장에 더 가까웠지요. “

p269 “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살 자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안전한 죽음입니다. “ 

#bookstagram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깨끗한죽음이라는환상_기시리뷰 #플랜75 #의사조력임종 #존엄사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이다 아니다  (0) 2026.07.31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0) 2026.07.29
  (0) 2026.07.24
인간실격 - 이토준지  (0) 2026.07.22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0)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