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서성이다

by 기시군 2026. 8. 10.

✔️
#서성이다 #장강명 #현대문학

💧
감기인 줄 알았던 아내가 새벽, 구토를 하며 몸을 못 가눈다. 119를 통해 응급실에 들어간 그는 아내의 뇌출혈 소식을 듣는다. 당직의사는 뇌종양 일 수도 있으며, 수술이 필요할 것이며, 후유증이 많이 남거나 심지어 사망할 수 있다 한다. 소설 ‘서성이다’는 그 후 3일을 다룬다. 

작가 장강명은 자신이 경험했고, 현재도 진행중인 이 시건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고통의 경험’을 남기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환자실 복도에서 썼다는 작가의 페이스북 글을 실시간을 봤었다. 놀랬고 걱정이 되었지만, 남의 이야기였다. 삼인칭의 고통은 언제나 객관화의 대상이었다. 소설이란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일인칭으로 그걸 경험케 하는 것이 장강명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진심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탄탄한 기본기의 글쓰기 솜씨와 만나면 책을 내려놓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첫 책장을 펼치고 마지막장을 읽을 때까지 물 한잔 마시지 않았다. 기꺼이 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었다.

💧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나의 일인칭의 고통이야기를 보탠다. 

'앞으로 길어도 5년, 아마 2~3년안에 사망하실 수 있어요.' 같이 진료실에 있던 부친을 밖으로 내보내고 의사가 내가 한 말이었다. 멍해졌다. 당연히 실감도 나질 않았다. 비록 부친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단호한 시한부 통보는 충격적이었다.

그 전에도 부친을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가 고단하게 날 괴롭혔지만, 그날 이후 벌어진 일에 비하자면 장난 수준이었다. '파킨슨 증후군'은 '파킨슨'보다 더 나쁘다. 원인은 알 수 없으며 진행은 무척 빠르다. 치료약은 없으며 문제는 움직임이 경직되는 것보다 판단력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부친의 통장을 열어보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마이너스 대출이 본인뿐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생활'을 침범하고 있었다.

정신없는 2년을 보냈다. 장작가처럼, 아니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안시찬' 처럼 나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신을 믿지 않았고, 나의 이성을 믿었다. 아군은 없었고, 이해 관계자들만이 존재했다. 내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은 그때 다 쓴 것 같다. 부친 명의의 부동산을 정리해 빚을 갚고, 부친을 감당할 수 없는 모친 대신 간병할 사람과 그 돈을 지불할 시스템을 만들었다. 유치원생 수준으로 지능이 떨어진 부친은 이틀에 한 번씩 사고(폭행, 폭언, 추행 등)를 쳐댔고, ‘운전도 할 수 없는 컨디션에 외제차를 사주지 않는다고' 나를 고소하러 변호사 사무실에 찾았다. 대화를 할 때마다 나를 향한 악담에 쌍욕으로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부친을 세상을 떴다.

가까이 본 소수만이 나의 일인칭의 고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안타까움과 격려가 고마웠지만, 내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한가지 얻었다고 할 만한 건, '어른'이 되었다는 자각정도? 사실 그것도 착각일지는 모르겠다만.

💧
글은 독자의 마음에 가라앉아 있는 '무엇'을 끌어올린다. 이 책은 내 안의 고통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냈다. 생생하고, 솔직하게,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면 소시오패스 같은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안시찬'에 공명한 이유다. 하지만 순간순간 올라오는 통곡의 기억은 자신들 밖에 모른다. 철저하게 외로워지는 순간.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나쁜 일’들은 대게는 이유가 없다. 착하게 산다고 암이 안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무작위성을 버티며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무게가 어디서 오는지, 그걸 버틸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잊지 말아야할 질문이라 생각한다.

덧,
이 책은 현대문학(@hdmhbook)으로부터 제공받았다. 감사의 말씀 전한다. 

✍ 한줄감상 : 우리 모두가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촘촘한 기록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김애란작가의 초기작 ‘두근두근 내 인생’, 그리고 얼마전 읽은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떠오른다.

p23 “ 그들의 네 발은 이미 진창에 잠겨 있다. 슬픔은 밀려  들어온다기보다는 차오르고 있다. “ 

p26 “ 뇌종양은 발견하면 이미 늦은 것임. 뇌 MRI로 발견했든 뇌 MRA로 발견했든 마찬가지임. 그러니 검사할 필요 X. “

p62 “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그게 우리잖아. “ 

p65 “ 자신에게 신의 대용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앗고, 문학과 저널리즘 정도면 가족이나 국가, 인류의 진보, 무속, 타로 카드보다 훨씬 나은 대상이라고 여겼다. 

p108 “ 교수님이 지금은 보호자님 안 만나시겠대요. 지금은 여기 계셔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세요. “ 

p110 “ 그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 슬퍼하거나 공감하는 마움이 둔하고, 그에 비해 이성이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조급할 따름이었다. “ 

p141 “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내가 책임질 것이고 내가 수습할 것이다. “ 

p177 “ 서른 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배고프지 않았다. 잠이라고는 전날 아침 한 시간 정도 잔 게 전부였지만 졸리지도 않았다. 허기나 졸음보다는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떠올라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 

p185 “ 환자분 종양의 위치는 좌측 전두엽이에요. “

p188 “ 뇌종양은 원인을 모릅니다. 왜 생기는지 저희가 알 수 없어요. 그냥 생깁니다. “ 

p215 “ 아니, 아니, 나는 이 고통을 기록해둘 거야. 이 희생을 치르고 내가 얻어야 할 성장 같은 건 없다고, 나는 누구의 뇌종양에도 결코 감사하지 않으며 신경교종이 존재하는 세상을 찬성하지도 않는다고 정확히 써놓을 거야. “

p223 “ 인간이 자기 고통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가능할까? “ 

#bookstagram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성이다_기시리뷰 #장강명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마는 열심히 산다  (0) 2026.08.14
물빛인쇄소  (0) 2026.08.12
책이라면 팔만큼  (0) 2026.08.09
투명한 나선  (0) 2026.08.07
새들의 사회성  (0)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