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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인 더 메가처치

by 기시군 202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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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메가처치 #아사이료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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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근처에 살다 보니 종종 어마어마한 숫자의 방청객들과 마주친다. 오후 방송이라는데 아침부터 줄을 서 있고, 손에는 응원봉이며 각종 굿즈가 들려있다. 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저 열정이 부럽다 정도. 많이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저렇게 쏟는구나 싶었을 뿐이다.

덕질하는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수십 장, 수백 장씩 CD를 사는 사람들. '팬싸컷'이라는 게 있어서, 많이 사야 일대일로 만나 인사하고 사인받을 자격이 생긴단다. 그쯤 되면 정성과 노력만으론 안 되고 자본이 필요하겠구나, 부자 아이들만 저길 가겠구나 하는 생각까지가 내 상상력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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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예전에 '정욕'을 읽으며, 세상이 정해놓은 '바른 욕망'의 경계 바깥에 선 사람들을 가차 없이 파고들던 작가라 생각했었다. 이번엔 그 시선이 '아이돌 팬덤 비즈니스'라는, 우리 눈엔 그들만의 세계처럼 보이는 곳을 향했다. '인 더 메가처치'는 그 세계를 세세하게 해부해 정밀한 세태소설로 조립해 낸다.

음반사 소속 중년 회사원 '구보타'는 '서사'를 잘 만든다는 이유로 특정 아이돌의 서사 기획자로 발탁된다. 회사가 원하는 건 흔한 팬덤이 아니라, 소수의 신도가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몰입형 집단을 설계하는 일이다.

구보타의 딸 '스미카'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엄마를 택하고, 학비만 아버지에게 받는 사이다.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부르는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덕질에, 그것도 열렬한 '신도'의 자리로 빠져든다.

월급 17만 엔에 방세만 6만 엔인 비정규직 노동자 '아야코'. 삶의 유일한 낙은 스타 '린타로'의 덕질이다. 어느 날 린타로의 사망 소식이 그녀의 모든 걸 앗아간다.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녀에겐 믿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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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이러는 걸까. “ 줄곧 제정신인 상태로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고, 인간의 수명은 지나치게 길기” 때문일까. 기성세대인 구보타는 학비를 대주는 대신 한 달에 한 번 딸과 의무적으로 하는 영상통화가 유일한 낙이다. 친구도 없는 중년 이혼남에게 인생을 빛나게 해 줄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스미카와 아야코라고 다를까. 해외 유학을 꿈꾸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스미카. 내일을 꿈꾸기 힘든 비정규직 아야코. 이들에게 자신의 '서사'를 건드리는 아이돌은 그 자체로 빛이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된다. 그저 좋아하는 스타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 즉 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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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중심도 결국 '서사'다.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 역시 서사일지 모른다. 누구나 자기가 믿는 서사에 기대어 살아간다. 정통적 가치관에 따라 가족주의에 충실하든, 특정 종교의 교리를 지키든, 정치적 활동으로 자기 이상을 좇든, 우리 모두는 서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문제는 어떤 '서사'냐는 것이다. 작가 료는 이 시대 가장 기이하게 벌어지고 있는 팬덤 현상을 빌려, 독자에게 당신의 '서사'는 무엇이냐 묻는다. 배경인 일본의 풍경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더 현실감 있게 읽혔다.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지그시 아픈, 인상적인 독서경험이었다. 

✍ 한줄감상 : 무엇을 믿으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강력한 질문.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팬덤을 다룬 소설이라면 이희주 작가의 '최애의 아이'가 먼저 떠오른다. 아이돌의 정자가 굿즈로 팔리는 세계를 그린, 훨씬 더 멀리까지 밀어붙인 이야기다. 중년 남자의 고독이라는 주제로 옮겨가면 #임성순  작가의 문제작 #자기개발의정석 도 있다. 아직 안 읽으신 분들께는 저의 명예를 걸고 추천한다. 😎

p21 “ 최애의 행복이 제 행복이니까요. “

p126 “ 사람은 서사에 약해. 퍼포먼스 그 자체보다 그 전후의 서사에 빠져드는 사람이 정말 많거든. 그리고 한번 서사에 매료된 팬들은 쉽게 떠나지 않지. ”

p130 “ 서사는 결국 정보를 꺼내 놓는 방식에 따라 소구력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이야. “ 

p141 “ 한국 요리를 시킨다고 들었기에 나는 편의점에서 참이슬을 사 왔다. “ 

p282 “ 본질적이지 않은 것일수록 열량 높은 전파가 필요하다. 상대의 시야를 좁혀야 하니까. “ 

p298 “ 마흔에 비정규직, 미혼, 무자녀면 세상 사람들 눈에는 투명 인간인 거니까. “ 

p314 “ 정보는 감정으로 변환되고, 감정은 서사로 둔갑해 퍼져나가며, 시야 협착 상태인 집단에 온갖 현상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

p340 “ 인생의 후반기에 얼굴을 내미는 건, 지금까지 해온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 쪽이라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 

p357 “ 잡담은 아마 돌봄일 거예요. 내용이 어떻든 가에 상대방이나 그 자리 자체를 보살피는 거죠. “ 

p426 “ 요즘의 K팝 붐은 주로 젊은 층의 자산을 해외로 유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도 블룸 마이셀프 공부 모임에서 배웠다. “ 

p441 “ 특히 아이돌 덕후들은 현실의 남자가 싫어서 아이돌을 보는 사람도 많거든요. “ 

p530 “ 중년 남성은 고독에 취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독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인 후회, 이 두가지를 자극하는 서사에는 특히 쉽게 집어삼켜지고 말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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