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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이름 없는 것들의 밤

by 기시군 2026.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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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것들의밤 #정보라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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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Prestige회원에게는 간혹 쓸 만한 혜택이 있다. 특정 작가의 기명 사인본을 판매하는 경우, 그 작가의 팬이라면 주저 없이 주문해야 한다. 기껏 2~300명 한정이기 때문이다. 9월 초 정보라 작가의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 대상이 되었고 바로 신청했다.

‘기계의 순리에 저항하십시오! 투쟁!’이라 쓰인 친필 사인본을 받았다. 읽든 안 읽든 잘 보관하리라 다짐하고 잊고 있다가 지난주에 책을 펼쳤다. AGI가 도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AI 에이전트가 인간이 정한 제약을 어기고 해킹까지 했다는 보도가 이어진 주였다. 사인 속 문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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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디스토피아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찢고 물어뜯고 잘라내는 ‘하드고어’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밤이 오면 우리는’, ‘예언자’,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세 편의 연작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미래사회, 기계(AI)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지구의 다른 모든 생명체에 위협이 되리라는 결론(p19)에 이른다. 인간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며 인간을 차근차근 말살해 간다. 기계를 숭배하는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려는 인간을 사냥하고, 임신은 종의 재생산 공장이 맡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기계의 합리성’이라는 폭력 아래 잔인하게 굴러간다.

아직 인간인 인간과 인간들의 혐오 때문에 만들어진 ‘흡혈인’, 그리고 전체의 통제를 거부한 인조인간 일부는 시스템에 처절하게 저항한다.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저항’인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고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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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하드고어보다 우리 현실이 더 하드고어하지 않나? 작가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과 가자지구 폭격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소설 속 기계는 피를 튀기지만 현실의 폭력은 훨씬 깔끔하게 온다. 효율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가자지구 폭격에 AI 표적 선정 시스템이 쓰였다는 보도가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드론이 병사를 쫓는 전장이 된 지 오래다. 그 뒤에는 결정을 설계한 권력이 있다. 이런 일들이 가속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노동이 금지되면서 노동자도 금지되었다(p169)’. 인간은 모두 구독한 기계로 수익을 내는 자영업자가 되어야 했다. 소설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문장이다. 플랫폼 위에서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효율의 세계에서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 존재는 가장 먼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약자가 그렇고, 서구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그 혐오를 연료 삼은 ‘극우’가 권력을 쥐는 지금이 그렇다. 혐오가 빚은 흡혈인이 인류의 마지막 무기라는 설정이 뼈아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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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그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연약하고 부드러워도 되는 세계’는 언제쯤 도래할까. 그날까지 연대의 작가 정보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폭풍우가 들이닥쳐도 그녀는 펜이라는 총으로 ‘적’들과 맞설 사람이다. 노동소외와 여성혐오, 약자혐오, 기업 착취, 가진 자들의 독식, 대형사고의 피해자이면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이를 악물고 문학이라는 ‘탄창’을 채울 것이다.

우리 문학의 세계에서, 이런 형태의 전사는 꼭 필요하다.

✍ 한줄감상 : SF하드고어 액션극으로 포장된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단호한 선언문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 라는 책도 썼다. 이 소설이 경고의 총성이라면 이 책은 그 뒤의 설계도다. 관료제와 목록, 알고리즘이 ‘합리성’의 이름으로 인간을 분류해 온 역사를 짚고, 자정 장치와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p19 “ 로봇은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아 활동을 계속하는 한 언제나 행성의 모든 다른 생명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p42 “ 흡혈인은 인류에게 남은 최후이자 최선의 무기였다. “

p74 “ 흡혈인은 생명징후가 없으며 자연 생식을 하지 못한다. 흡혈인은 포유류의 혈액에 의존하는 기생종이다. “.

p98 “ 기계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는 존재가 있었다. “

p106 “ 천사의 목 위에는 머리가 없었고 날개마다 끝에 머리가 하나씩, 모두 여섯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천사의 머리들은 얼굴 한가운데 외눈이 박혀 있었고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여섯 개의 외눈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

p169 “ 노동이 금지되면서 노동자도 금지되었다. 인간은 하나같이 빠짐없이 구동자이면서 소비자이고 구독한 기계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영업자가 되어야 했다. “.

p198 “ 여자는 낯선 사람의 아내가 되지 않았던 소녀다. 아이 낳는 기계가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여자는 몸을 잃고 자유를 얻었다. “

p216 “ 기계한테 의식을 먹혔어. 몸은 살아 있지만 네가 알던 마리카는 없어. 그리고 마리카가 아는 건 이제 저들도 다 알아. 너도, 윌버도, 오빌도, 빌리도. “

#bookstagram #bookreview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기시리뷰 #이름없는것들의밤_기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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