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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늦게 읽게 된 건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작가의 단편집 #빛의호위 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두번째,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읽고 난 지금은 표지야 어떻든, 전작이야 어쨋든 작가가 전하고 싶어하는 '단순한 진심'이 올곧이 담겨져 있는 묵직한 책이란 느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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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철길에서 발견된 여자아기, 1년 간 어느 기관사의 손에 길러지다가 고아원으로 옮겨지고 결국 프랑스로 입양이 되게 된다. 나나로 불리우는 그녀의 한국 이름은 '문주'. 어느날 한국의 독립영화 감독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을 영화에 담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망설이다 결정한 한국행. 뱃속에는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아기가 있다. 서울 이태원 숙소에서의 첫날 1층에 '복희식당'을 운영하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잠시 위탁했던 여자아이가 벨기에로 입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만 그 말에 믿음이 가질 않은다. 다음날 그녀는 청량리철길에서 첫촬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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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소설이다. 인간의 근원과 존재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짙은 사유를 담은 글이라 가볍게 읽히질 않는다. 이야기 전개는 촘촘하다. 묘사는 섬세하고 깊다. 읽으며 비오는날 옛 한옥에 앉아 비에 팅겨지는 흙냄새를 맡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었다. 이름과 거기에 부여된 의미들이 소설에서 흩어져 있으며, 등장인물들 사이로 스민다. 자신을 통과해 버린 '이름'들을 응시하며 더듬는다. 불리워지는 그 '이름'들에는 어떤 '진심'들이 존재하는 걸까. 작가에게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한다. 이름을 찾은 여정. 흔한 멸시와 귀한 '타인의 환대'에 대해서 '섬돌위에 내 운동화를 내려다 보듯' 찬찬히 그리곤 집요하게 소설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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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반이후 두가지 큰 사건을 교차시키는 과정에서 약간의 '과함'이 느껴졌다. 작가의 욕심에 밸런스가 무너졌나. 아니면 작가가 주제에 너무 빠져들어간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기대보다 한뼘정도 높은 감정의 온도가 계속 이어졌다. 좀 더 낮추면 완성도가 올라갈텐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이 끝날때쯤 깨달았다. 소설은 영화적인 척 했지만 연극적이었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에게 똑똑히 '진심'을 전하고자 평소보다 더 감정을 실어 발성하는 배우들의 진지한 목소리였다. 이해가 되었다.
덧,
생명을 잉태해 본적이 없는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이 책의 미덕을 더 찾지 못했을 수 있다. 탄생의 경이보다 소멸의 '진상'을 더 가까이 경험한 최근 몇해간의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족이다.
p43"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p192" 서영의 말대로 철로에 버려졌다는 단정은 스스로를 가엾게여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 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뎌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 고립이 필연적인 자기 연민에 침잠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나 그 마음의 상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
p195" 내가 바라는 건 우주의 건강과 평화, 오직 그뿐인데 누군가 내 삶에서는 그마저 너무 큰 욕심이라고 단언할까 봐 나는 종종 슬퍼지곤 했다. 내 주변에는 그토록 잔인한 말을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목소리는 내가 전망하는 미래에 안개처럼 혼탁하게 깔려 있었고, 나는 자주 내게 남은 시간이 두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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