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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담긴, 쿤데라의 '소설'에 대한 정의인 ' 아무도 진실을 소유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해받을 권리가 있는, 매혹적인 상상력의 영토'가 소설의 영역이라면 작가 이장욱은 현시점 가장 매혹적인 상상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한다. 2022년 5월, 작가는 네번째 소설집을 묶어내었다.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세밀한 서사는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그가 찾고 있는 '근원'에 대해여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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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언제나 처럼 다 좋다. 피드 분량 상 몇편의 개요만 본다.
* 잠수종과 독
외과전문의 '공'은 사진작가인 그녀의 연인인 '현우'와 함께 산다. 어느날 방화의 현장을 사진에 담으려다 '현우'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지금 '공'앞에 '현우'를 죽게했던 방화범이 심한 부상 상태로 누워있다. '공'은 그의 담당의다.
*트로츠키와 야생란
남자는 러시아로 홀로 도피했다. 남자의 연인은 활동하던 단체에서 모함을 당해 쫓겨가고 심지어 산에서 굴러떨러지는 부상으로 입원을 했다. 남자는 연인을 모함했던 '그자'를 찾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복수를 행하고 만다. 도망온 남자는 호수가운데 조그만 민박을 운영하는 '트로츠키'라는 남자를 만나게된다.
*유명한 정희
나는 어린시절 주인집 아들인 '정희'와 친했다. 어느날 같은 이름의 대통령이 죽었고 '정희'가 좋아하는 묵념을 하기도 했다. 둘이 하던 놀이 중 물속에서 숨을 오래참기 내기가 있었다. 대부분 '정희'가 이겼다. 어느날 대야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정희'를 보다가 갑자기 분노의 감정에 휩쌓이게 된다. 그리고 세월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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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생경해하는 작가다. 그래서인지 이 책엔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죽음과 이별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간 사람도 남은 사람에게도 유의미하게 남은 건 어떤 순간의 '감정'이다. 사랑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혹은 그 모든것이 섞여버려 특정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든. 작가는 부지런히 그 감정들의 교차와 용해점의 위치를 더듬는다. 더불어 ' 사람을 딱 보면 안다는 것은 어쩐지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감각의 사람인지라 슬퍼지지 않기 위해 까만색 유머도 잘 섞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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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듯 묵직한 세계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작품들 몇편은 신기한 세상이다.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났고 그래서 옆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계다. 같은 이야기가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교차로 묘사되며 '행복'과 '고통'에 대한 변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부동산 개발이 이슈가 되는 동네의 하늘엔 코끼리와 고구마가 떠다니기도 한다. 현실과 환상이 섞여있는 세계가 작가에게는 안온함을 주는것 같다. '메멘토모리니 카르페 디엠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유효기간은 하루이틀 정도' 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기에 고통속에서도 웃으며 슬퍼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사 없이 이장욱스러운이라는 스타일의 소설을 완성해가고 있는 작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덧,
책 중에 '(군대)제대를 했을 뿐인데도, 인생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문장에 눈에 꽂혔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제대'라는 별것 아닌 이벤트를 전후해서 인생의 진행속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느껴진다. 어느틈엔가 이 나이가 되어 버렸다. 서글프단 생각도 있지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제대'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서'적으로는 변한게 없지 않나라는 생각때문이다.
p78-트로츠키와 야생란 " 기민하면서 동시에 순진하지 않으면 혁명의 일을 할 수 없다. 기민한 직관과 순진한 의지가 그의 것이다. 불안과 회의와 의심 같은 것을 그는 모른다."
p79-트로츠키와 야생란 " 자기비하를 자존의 방식으로 삼지 말라고 19세기식 자조는 이미 낡을 대로 낡았다고. 지금은 21세기라고, 도스토엡스키식의 장광설은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호수에 묻고 돌아가라고."
p123-땡땡 " 대상화? 대상화가 뭐야? 물에 사는 걸 다 물고기라고 부르는 게 대상화예요. 인간 입장에서 대상을 멋대로 결정해 버리잖아요. 물에 사는 생물을 식용으로 보는 거죠."
p156-유명한정희 "
인생에는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고이는 웅/덩/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p160-유명한정희 "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수십수백가지의 다채로운 얼굴로 떠오르고, 누군가에게 인생은 단 하나의 얼굴로 수렴된다. 어느 편이 좋은 것인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겠지만."
p171-유명한정희 "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우리가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거나.....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p208-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스러워요. 행복과 고통의 비율이 절정해서 사람들은 각자의 비율로 살아가죠. 그 비율을 벗어날 수 없어. 운명이라는 것은 그 비율의 이름"
p264-노보 아모르 " 삶에는 따로 고귀한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이 없으며, 단지 이런 사소하 순간들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걸 깨닫는 거지. 마치 몰랐던 것처럼. 심오한 지혜라도 얻은 듯이."
p266-노보 아모르 " 예의란 교양 있는 중산층 소시민들의 에티튜드에 불과하며, 예술이란 바로 그런 태로를 조롱하고 비판하고 전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p279-노모 아모르 " 머릿속으로 생각한 걸 입 밖으로 다 내뱉지 말라고. 그건 솔직한 게 아니야. 노골적인 거지. 구분 좀 하고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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