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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시도에 실패하고, 내가 왜 이걸 완독하겠다고 이 고생을하고 있나 싶었다. 눈으로만 읽는 책을 다 읽었다고 완독했다 할 수 있나? 마음을 바꿨다. 견뎌낼 수 있는 단편만 골라읽자. 대신 '예습'을 하여 전문가들이 중요하다는 작품위주로 골라 읽었다. 읽다보니 약간 익숙해져 절반정도는 읽어낸것 같다. ☺️ 전략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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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의 17편중 4개의 단편을 골랐다.
*바벨의 도서관
사람들이 '도서관'이라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로 구성된다. 나는 '편람 중의 편람'인 한권의 책을 찾아 여행을 했다. 지금은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인류가 멸망 직전에 있다 해도 '도서관'은 불을 환히 밝히고 고독하게, 그리고 무한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소중하고 쓸모 없으며 썩지 않고 비밀스러운 책들을 구비하고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p108)'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프랑스의 가상의 작가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통채로 베껴서 발표한다. 소설의 화자는 이 작품을 극찬한다. 모든 글짜가 똑 같은 두개의 작품에 대해 화자는 가상의 인물인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이 '무한할 정도로 풍요롭다'고 칭찬한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푸네스는 기억의 천재다. 스냅샷처럼 그 순간의 장면을 기억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흩날리는 특정시간의 특정나무의 모습을 무한히 기억한다. 감각적인 기억은 지금의 언어로 담기 어렵다. 그는 2만4천개의 숫자로 숫자들의 체계로 언어을 재구성한다.
*바빌로니아의 복권
그곳은 사람들이 '복권'을 즐긴다. 행운과 불운이 섞인 복권이다. 불운중엔 징역을 살거나 신체를 자르거나 죽기도 한다. 어느새 전국민이 복권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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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소설은 공부하고 보는거 아니다라는 지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엔 예외사항이다. 보르헤스를 '읽기'위해선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하다. '보르헤스' 연구는 차고 넘친다. 복잡한 이야기들을 단순화시키는 무식한 방법으로 그를 이해해 보려 한다.
'과학적인 이성'의 긍정적 전망이 있던 19세기말을 지나 20세기에 들어서 그 '이성'들은 서로 싸워가며 두번의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다. 지식인 '보르헤스'는 '이성'에 대한 염증이 가득해 졌다. 그놈의 '이성'은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보르헤스가 보는 세상은 '이유없이 일어나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가지고 있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는 '편람의 편람'이라는 진리를 찾으나 실패한다. 아니 찾을 수 없다 믿는다. 대신 그에게는 '모든'책을 소장한 도서관 자체가 의미있다. 진리는 부재하고 중심은 해체된다..
중심을 놓아버리면 좋아지는 점이 있다. 실제와 가상, 진지함과 가벼움 허구와 실제 등 중심과 변방을 가르게 되는 단어들의 무게가 동일해 진다.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서 세르반테스의 오리지날보다 몇백년 뒤 카피되어 나온 작품이 더 의미있다해도 문제가 없다. 저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를 수용하는 수백만의 독자가 각자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개념의 전복이다.
체계화와 합리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니, 숱하게 많은 개별들이 남는다. '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무한해 가깝게 늘어나는 개별들을 담아내려 한다. 지금의 인류언어와 다른 언어를 상상한다. 어느순간 보르헤스는 세계의 다양성 앞에서 우리의 '인식' 자체의 초라함과 협소함을 지적하고 한다. 대안을 찾을 생각은 없다. 그의 세계는 이미 달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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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치는 여기까지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이 불었던 시절에서도 20년이상이 지났다. 없어졌다고 믿었던 '중심'들이 다른 모습들을 하고 기어나와 다시 전쟁도 일으키고, 복고의 사회문화가 생성되기도 한다. 그가 믿었던 '개인의 개성'은 '개인화된 소비자들'로 전락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보르헤스를 추구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한 맥락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랬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독서의 근육'을 키우는 행위라고. 그 이상의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상은 '중심'을 쥐고 흔드는 커다란 힘들이 너무 많다.
별첨1. 바벨의 도서관에서 보르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모든'이라는 말이 주는 '행복감'은 피할 수 없다. '태고적'부터 존재하기에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며 '의미없음'과 '터무니없음'이 정상이며 '합리성'으로 찾을 수 있는 '진리'는 기적에 가까울 만큼 예외적인 것.(p108)"으로 본다.
별첨2. 양피지사본 (palimpsest) 개념을 찾아보게 되었다. 오랜 과거, 종이대신 양가죽이 쓰이던 시절, 원전이 써있는 양가죽를 버리지 않고 그 위에 다시 가필의 덧입히는 형태. 보르헤스는 모든 예술작품을 그 '가필'로 본다. 그의 세계에선 '창작'은 없다. 모든 저자는 덧붙혀 '생산'을 할 뿐이다. 창작은 해체되었다. 중심의 유실은 모든 것의 해체를 부른다. 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유이다. 네루다, 나보코프, 푸코, 데리다 등이 그를 따랐고, 한국의 젊은 작가인 #정지돈 역시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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