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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보르헤스의 말

by 기시군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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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글보다 말이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마전에 읽은 #픽션들 을 생각하면 다른 작품으로 보르헤스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꽤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터 였다. 우연히 '마음산책'의 말시리즈에 보르헤스 인터뷰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고,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왠지 보르헤스는 숙제같은 기분이라 그냥 넘기기 찜찜한 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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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든 무렵의 보르헤스가 미국의 지인 학자들과 나눈 11번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 부모이야기, 초기 문학을 시작할 때 이야기, 가족력으로 오십대 중반에 시력을 잃은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 등이 인터뷰 전반에 펼쳐져 있다. 내게 관심이 더 가는 부분은 창작론, 생과 사에 대한 견해,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설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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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매일 아침 눈을 뜰때, 내가 보르헤스이며 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어쩌면 내가 쓴 모든 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당혹감이라는 핵심 주제에 관한 은유이거나 변용에 불과(p43)'할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당혹감, 그것은 마음이다. 불가지한 세계를 살아가는 한명의 '보르헤스'. 그에게 글은 살아있음의 증거였으며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다. 그에게 시와 산문은 구별할 수 없는 글쓰기였으며 '기억과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p51)' 상상력에 의해 구현되는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는 죽음을 희망했다. '인생이, 세계가 악몽(p152)'이라고 생각하는 보르헤스는  '결국 나의 삶은 덧없는 것이 될 것이고, 나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거나 또는 그의 것이 될 것이다.(p103)'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것이라니. 보르헤스가 바라보는 유의미한 존재 ‘그'라고 표현된 '그’는 보르헤스의 독자들이다. 그는 꿈을 꾸듯  '아름답고 의미 없는 시(p110)'를 세상에 던져놓고, 그 작품의 의미는 수용자인 독자들에 의해 탄생된다고 믿는다.

보르헤스는 포스터모더니즘의 시작점으로 추앙받는다. 왜일까. 그는 '세계를 수수께끼로 생각'하고 있으며 ' 아름다운 사실은 수수께끼가 풀리 않을 거(p148)'  믿는다. 신을 믿지 않으며, 이성 또한 믿지 못하는 환상적 탐미주의자는 중심의 해체를 주장하던 포스터모더니즘이라는 신사조의 상징으로 어울릴 수 밖에 없다. 모든것으로 부터의 자유를 외친다. '정치도 믿지 않고 국가도 믿지 않아요. 부나 가난도 믿지 않은답니다. 그런 것들은 환상이에요.(p165)'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담은 이야기(p170)'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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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은 더 있으나 피드 분량상 마무리 지어야 할 듯 하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보르헤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매력적인 작가로 왜 전세계적인 추앙을 받아왔는지도 알것 같았다. 그의 사상과 문학관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내겐 '즐길 수 있는 작가'는 아니였지만, '기억해 놓을 만한 작가'로 남을 것 같다. 책의 맨 첫머리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맞다. 보르헤스의 세계관 전체엔 동의못한다 해도 이 문장엔 100% 동의한다. 앞으로도 보르헤스의 응원에 힘입어 '즐거운 독서'를 위해 교보와 알라딘을 돌아다닐 예정이다. 😁 벌써 다음의 ‘말 시리즈’를 찜해 놓았다. 이런 스타일의 책도 좋아한다.

p28 " 지옥에 관해 말하자면, 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고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난 지옥을 상태라고 생각해요."

p36 " 시를 쓰는 것이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작가의 의지를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아요. 나는 일부러 어떤 주제를 내세우려 한 적이 없어요. "

p40 " 과거는 우리의 보물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과거뿐이고, 과거는 우리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어요. "

p66 " 시가 내게 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소설의 경우에 는 더욱더 그렇구요."

p92 " 나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고 싶어요. 그리고 잊혀고 싶어요. "

p132 "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책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거예요. "

p139 " 나는 그 이야기(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불면증에 대한 은유 또는 알레고리로 썼어요. "

p204 " 아름다움은 희귀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발견해요."

p219 " 나는 허구(fiction)를 쓰지 않는다. 사실(fact)을 창조한다. "

p327 “ 나는 예술이란 암시하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물과 현상 을 암시할 수만 있을 뿐이에요. 그걸 표현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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