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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생년월일

by 기시군 2023. 7. 9.

✔️
#생년월일 #이장욱 #창비  


🗓️
이장욱작가처럼 생경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시를 쓰는 이들에게 동조를 일으키기 위해선 정서적 교감이 필요하다. 뭐 특별한건 없다. 살짝 더 삐뚤고, 살짝 더 짙고, 살짝 더 거칠은 질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다. ☺️ 그렇게 태어나지긴 쉽지않고 그렇게 만들어져야 할 판인데, 보통은 ‘왜 그렇게 생겨먹었니’ 핀잔이나 듣고 자랐다면 준비는 끝났다 하겠다. 그렇게 살지 않았고 이해도 못하겠단 분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

2011년에 발간된 이작가의 세번째 시집이다. 최애작가 중 한명이라 지난 작품들 섭렵중이다.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애정어린 눈길로 그만의 시세계에 빠져 같이 허우적 거려 보기로 했다.

🗓️
인간이라는 개체 스스로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낯선 입모양으로 지낸다
당신은 언제 스스로 일까요?
부디 당신의 영혼을 말해주십시오
(오늘은 당신의 진심입니까?p12)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여는 입모양 자체도 낯설다. 일상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이고 진심이고 진짜일까. 살아가는 우리가 그걸 알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깨달음이 다가온다고 느끼면 울컥하고 올라오는 탈출욕구.



햇빛이 당신을 넘치고 그녀의 말이 당신을 넘치고
가정의 평화와 일기예보 역시.
당신은 또
당신에게서 벗어난다.
(흘러넘치다p22)


그렇게 넘쳐서라도 빠져나갈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스름한 저녁 가야할 길에 대한 막막함과 두고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걸음을 무겁게 한다. 알 수없는 힘에 의지해서, 또는 내 힘을 배가 시켜지는 기구에 힘을 가해, 지나갈 뿐일지 모르겠다.


아주 먼 곳은 등뒤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손은 당신의 두 눈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기린의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식당을 지나갑니다.
(우울하고 감상적인 삼단논법p30)


지나감은 되돌아 옴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라는 개체를 생각해 보라. 후회와 자기연민은 지긋지긋하게도 영원히 디폴트 값이다. 글을 찍는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떨린다. 아.. 수전증은 아니다. ☺️ 빨리 끝냈으면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 보자. 주식거래 앱에 손을 올리고 있나? 아니면 쇼핑몰 상품을 검색중이였을까.  


왼손은 수십개의 사소한 실망 들을 알고 있다 왼손은
조금 더 가까운 데서 생각한다 왼손은
먼저 떨린다
(오른손은 모르게 p34)


실망하지 말자. 죄책감은 타자들이 파놓은 함정일 뿐이다. 불안해 하지말자. 당신이 어떤 상태이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언더 더 스킨, 한꺼풀만 까내리면……


나는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뿐인데
난데없이
인생이 깊은 늪이 라는 것을 깨달았다
……
시체는 괄호 속에 넣어둘 수가 없다.
팔이 툭 튀어나오고
자꾸 혀를 내민다
동거냐, 사육이냐, 사물이냐.
(늪p54)


🗓️
잡자기 이렇게,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 물을 탄다. 알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마라. 나와 당신들의 삶의 모습이다. 비겁도 일상이 되면 생활이다.


피를 뽑은 후에 사람들은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어제의 거짓말을 시작했다.
공공장소에서는 누구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되고
피의 종류에 대해
해박해지고
(피의 종류p90)


그저 마모될 뿐이다. 우리의 계획은 황홀했지만 단절되어 간다. 아니 모르는 척 피맛에 입을 다실 뿐이다.


함부로
겨울이야 오겠어?
내가 당신을 문득
겨울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어느날 당신이 눈으로 내리거나
얼음이 되거나
영영 소식이 끊긴다 해도
…..당신은 지금 어디서
혼자 겨울인가?
허공을 향해 함부로 질문을 던지고
어느덧 눈으로 내리다가 문득
소식이 끊기고
(겨울에 대한 질문p114)


🗓️
작가는 말한다. ‘벽돌을 쌓듯이, 던지듯이, 깨버리듯이 , 껴안듯이 쓰여진 문장들p142’이라 한다. 삶이 가지는 본원적인 불안, 존재에 대한 투박한 의문따위들로 시어들을 지었다. 의심과 확신은 동어반복처럼 지속되는데, 내지르고 싶은 깊은 한숨은 꾹 참아내는 형세다. ‘혼자 겨울인가?’ 아니다. 물질적인 조건이라는 목줄에 매달린 인생들에게 삶의 대부분을 저당잡힌 현실이라는 괴물들에게 ‘기린’과 ‘자전거’따위들로 대담하게 던지는 한마디 씩 들이다. 변함없이 간결하게 끝내는 불안, 안락함을 참지 못하는 서술. 이장욱의 시. 자신을 드러낼건 ‘생년월일’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심술이다. 사랑스런 심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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