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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2666

by 기시군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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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로베르토볼라뇨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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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문학의 대표작가 볼라뇨의 유작 2666이 이번에 새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5권으로 출간하길 원했으나(실제 우리나라에선 2018년 열린책들을 통해 5권으로 출간된적이 있다.) 작가 사후, 편집자의 결심에 따라 한권의 거대한 책으로 만들어진것이다. 남미문학이면 마술적 사실주의만 떠올리는던 시절, 비타협적 자세로 자신만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 볼라뇨. 그를 충분히 즐길 책을 구했다.

912페이지에 대략 무게가 2.3kg 쯤 된다. 크기는 딱 A4용지 크기. 펼쳐 놓고 읽으니 광활하다. 한손으로 들고 있는 독서가 익숙한 나에게 조금 괴로운 독서자세가 필요로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금새 적응을 했고 크고 아름다운 책을 읽은 즐거움에 쉽게 빠져들었다. 들고다니질 못하니 일주일동안 매일밤은 이 책과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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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이라는 제목이 궁금했다. 관련자들 의견에 따르면 연도라고 한다. 그리고 묘지. 2666년의 공동묘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망각에 빠진 공동묘지의 해p898' 라고 한다. 제목부터가 미묘하다. 아무튼 5권의 개요를 짤막하게 정리해본다.

*비평가들에 관하여
노벨문학상 수상예정자로 거론되는 전설의 독일작가 ‘아르킴볼리’를 찾아 3명의 유럽 문학비평가들이 작가의 흔적이 있는 멕시코를 찾는다. 한명의 여성과 세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비평가그룹 모두는 아르킴볼리에 심취해 있어며 그 중 3명은 육체적관계를 맺고 있다.

*아말피타노에 관하여
‘아르킴볼리’의 번역자로 유명한 아말피타노 교수는 딸 '로사'를 데리고 멕시코의 산타테레사대학의 교수로 부임한다. 교수가 예술과 죽음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동안, 딸 '로사'는 어쩐지 위험해 처해질 것 같다.

*페이트에 관하여
권투경기 취재차 산타테레사 방문한 미국인 흑인기자 페이트는 권투보다 200여건에 가까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성 강간살인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진다. 페이트는 취재 중 만난 교수의 딸 로사와 위험한 산타테라사을 벗어나려 한다.

*범죄에 관하여
몇백페이지에 걸쳐 그녀들의 강간살인 현장들의 모습과 그 뒷처리 과정을 드라이하게 묘사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더렵혀지고 죽어갔고 살인의 순간이 아닌 이 후의 과정이 경찰보고서 같은 형태로 질릴 정도로 쌓여 올려져 간다. ‘클라우스’라는 용의자가 잡혀있기는 하나 여자들에 대한 강간살인은 계속된다.

*아르킴볼디에 관하여
과거 독일의 어느 시골, 한스 라이더는 부모와 여동생 ‘로테’와 살고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사병으로 참전하던 중 유대인 작가 안스키의 일기를 발견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종전 후 ‘아르킴볼디’라는 이름으로 여러출판사에 투고를 하다 한 출판사에 눈에 띄어 작가로 데뷰하게 된다. 오랜세월이 지나 여동생 '로테'와 재회하게 되는데 '로테'의 아들은 멕시코에 수감중인 '클라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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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내었어도 좋았을 책이다. 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1,2권은 지식인들의 믿음과 허위의식, 그리고 관계의 그림자들 더듬는다. 프랑스작가의 작품같은 느낌이다. 비평가들의 대화는 현학적인 이론과 속물적인 욕망이 중첩되어 있고, 교수의 사유는 분열적으로 펼치진다.

관념소설의 외형으로 시작된 소설은 3,4권에 넘어오면서 서사의 속도감과 개별사건들의 무게에 힘이 실린다. 하드보일드한 미국 추리소설 같다는 느낌. 압권은 수십 수백개로 이어지는 강간과 살인보고서일 것이다. 이 메마른 문장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삶’의 의미, 또는 ‘악’과 ‘인간성’이라는 추상들의 구상을 목도할 수 있다.

5권의 분위기는 또다르다. 정말 독일작가가 쓴 19세기 교양소설의 느낌. 맥거핀인줄 알았던 ‘아르킴볼디’라는 작가의 생애를 전통적인 방식 서술하며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궁극에는 앞의 4권의 소설들 모두를 느슨하게라도 묶어내어 하나의 거대한 소설을 완성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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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이 쓰여질지도 모른다 했다. 작가가  젊은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조금은 단순하게 읽었던  #칠레의밤 과는 다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작가라는 느낌이 남는다. 그에게 계급과 여성 등 정치적인 주제는 외면하지 못할 코어이다. 그리고 그 코어를 둘러싸는 문학적 장치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보통 이런이를 우리는 거장이라 부른다.
길었지만 놓을 수 없었고, 쌓인 시신들은 고통스러웠지만 몰입해서 읽었다. 그저 좋았다.

덧,
미국 국경에 있는 가상의 도시 산타테레사는 실제 존재하는 '후아레스'를 모델로 한다. 나프타 발효 후, 북미 자본주의의 혜택과 해악을 같이 받은 도시이다. 멕시코 경제에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나 만들어진 부는 가진자들에게 편중되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과 부실한 사회시스템에 시달린다. 부패와 폭력은 넘실거리는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그 중에서도 약자인 여성들이다. 책의 내용처럼 실제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적게는 200명, 많게는 500명의 여자가 강간살인을 당했다.

p41 “ 홍등가인 장크트 파울릴르 걷는 동안 펠티에와 에스피노사는 아르킴볼디를 찾는다 해도 결코 자신들의 삶이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책을 읽고 연구하고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배꼽을 잡으며 웃을 수도 없고, 그와 함께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

p68 “ 나는 외로운 늙은이야. 펠티에는 생각했다. 늙고 고독한 독일인들 중 하나였다. 독신 기계(스스로 즐거움과 쾌락을 생산하는 존재-들뢰즈/가타리) 가았다. “

p127 “ 그는 죽어 가고 있며, 20세기 최고의 독일 작가가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아는 독자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혔다. “

p196 “ (시차증) 한편 이런 발상 혹은 이런 느낌, 또는 이런 종작없는 생각들은 나름대로 만족스로운 측면을 지냈다. 그것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

p213 “ 빨래줄에 걸린 디에스테의 책은 산타테레사 근교나 그 안에서 본 어떤 것보다도 밝고 흔들리지 않으며 사리에 맞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아말피타노는 생각했다. 그가 본 것은 기댈 곳 없는 이미지, 이 세상 모든 고아의 몸안에 담긴 이미지, 파편들, 파편들이었다. “

p261 “ 은유는 겉모습 속에서 몰두하거나 혹은 겉모습의 바다에 그대로 있으려는 우리 나름의 방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은유는 구명조끼와 같습니다. “

p322 “ 내게 성스로움이란 무엇일까? 페이트는 생각한다. 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모호한 고통일까?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여자를 쳐다볼 때 내가 느끼는 복통일까? “

p415 “ 시체의 머리는 구멍에 처박혀 있었다. 마치 살인자, 즉 의심할 여지 없이 미친ㄴ놈이 머리만 묻으면 된다고 생각해거나, 아니면 머리를 흑으로 덮으면 너머지 부분의 몸은 어떤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양손 모두 둘째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이 절단되었다. … 가슴과 팔을 칼에 많이 찔렸지만 사인은 설골 골절이 동반된 교살임이 밝혀졌다. 강간의 흔적은 없었다. “

p456 “ 죽은 여자의 이름은 소피아 세라노였고 마킬라도라 공장 세 군데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식당종업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고, 최근에는 공동묘지 뒤에 있는 시우다드 누에바 지역의 공터에서 창녀로 일했다…. 그래서 그녀의 시체는 산타테레사 대학교 의대 학생들의 실습용으로 기증되었다. “

p528 “ 잠시 네 사람은 연옥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 즉 하염없는 난감한 기다림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했다. 그런 기다림의 핵심은 바로 무력감, 그러니까 매우 라틴 아메리카적인 경험이었다. “

p612 “ 현실은 천동과 번개가 몰아치는 폭풍우 한가운데 있는 마약에 중독된 뚜쟁이 같아요. 여자 국회 의원이 말했다. “

p681 “ 문화란 삶인데, 단 한사람의 삶이나 단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일반적인 삶이라고, 즉, 일반적인 삶의 표현이며 심지어 가장 저속한 표현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p782 “ 놀이와 착각은 이류 작가들의 눈가리개이자 총동이야. 또한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지. 그것은 현기증 날 정도의 속도로 커져 가는 숲이야. “

p833 “ 그녀는 유령이나 귀신 혹은 이데올로기 따위를 결코 믿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육체와 다른 사람의 육체만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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