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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낮은 해상도로부터

by 기시군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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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해상도로부터 #서이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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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 #0%를향하여 가 발간된 2021년과 이 책의 출시일인 23년 8월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그녀에겐 2년의 세월이지만 나에겐 며칠 사이.  다시 만나는 작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꽤 괜찮은 신인소설가였다가 이미 동시대의 시대성을 반영해 내는 완성형 작가가 되어버린 인물, 소설가 서이제를 며칠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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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구 시대의 우리는 책과 사람들을 통해 꿈을 꾸었다. 지금 이 시대 청춘들은 새로운 꿈을 TV나 스마트폰을 보며 꾼다. TV조차 스마트폰으로 보며 ‘ 유튜브 없이는 밥 조차 먹지 못하는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별들’의 세상이고 자신은 작은 소행성 하나로도 살아가기 힘들다. 픽셀로 그려지는 세상과 조우하는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 동료들에 대한 성찰이 소설적 언어로 길고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스타’는 ‘#’으로 표시되는 상징으로 표상되어 소비되는 지금, 출처있음과 없음의 혼재, 힙합의 플로우는 아무 무게없이 내 장바구니에 담긴다. 낮은해상도로 밖에 인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삶과 죽음, 두개골의 안과 밖으로 분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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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아주 무표정하게 초고화질 TV와 몇억화소의 스마트폰을 향유하는 우리들에게  ‘낮은 해상도’사는 삶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미지로, 이미지 안에서 또는 이미지로만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나는 말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사람p182’이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을 나누기 너무 멀어진 시대. 사람들은 말 대신 ‘메시지’로 사랑을 나누며 좋은 메시지는 ‘좋아요’, 나쁜 메시지는 ‘차단’이나 삭제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안에 유랑하는 나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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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중심으로 한 평론가의 해설에 찬성할 수 없다. 불연속적인 아날로그라고? ‘해상도’에 따라 우리는 아날로그의 연속성을 인지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서이제 작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분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둘의 결합을 의도한다고 생각한다. 나나 우리보다 많이 출현하는 ‘너’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서사들은 우와 열, 지배와 피지배에 대한 세상에 대한 ‘개김’이다. 진정한 의미로 ‘리좀’적이며 탈근대적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영원에 다가가고 싶어한다.’ 실재와 가상은 혼재되어  있으나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세계는 궁극적으로는 가상이기에 그저 ‘소설’이란 이름으로 예술화 된다.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이다.

✍ 한줄 감상 : 실험적 시도였던 도전의식이 너무 짧은 시간에 완성형으로 변모해 버린 (긍정적인 의미의) 괴물 작가의 실제적인 첫단편집

p24 “ 그저 점점 커지는 숫자를 보며, 점점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며, 돈을 벌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돈을 버는 것 말고, 내게 다른 꿈이 있었던 적이 있나, 나는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p61 “ 소행성 충돌도 막아내는 세상에, 나는 내게 다가오는 명절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깐 밤과 떡국에게 절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낼 수가 없었다. “

p91 “ (17세기 튤립) 사실 그들이 사고파는 것은 꽃도 아름다움도 아니었다. 그들은 욕망만을 사고 팔 뿐이었다. 그들이 사고파는 것에는 실체가 없었다. “

p125 “ 소설과 힙합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

p150 “ 그는 언제나 나를 등지고 서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나는 블로그 게시물보다 못한 존재일까. “

p160 “ 일단은 담고 또 담았다. 담고 또 담아도 장바구니는 무거워지지 않았다. 무거워지지 않아서 담고 또 담았다. 담고 또 담아도 되었다. 담고 또 담으면, 온라인스토어는 내 취향을 파악해 내게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었다. “

p181 “ p는 나와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매주 만나서 밥 먹고, 술 먹고, 자는 것 이외에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p215 “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인 걸까. 나는 자책하면서도 자꾸만 너를 탓하고 싶어졌다. “

p231 “ 그때 너는 그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었다. 내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일까. 나는 나를 이토록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

p267 “ 정말로 네가 너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 맞는지 궁금했다. 죽은 것인지, 아직 죽지 않은 것인지, 너는 그것을 영원히 알 수 없었다. “

p274 “ 필름은 현실의 재현과 복원을 위한 것이지만, 디지털은 사라짐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적 경험의 과잉은 오히려 미적 경험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어쩌면 댓글창이야말로 이 시대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

p279 “ 연극만이 가지는 현장성과 즉흥성, 관객과의 호흡,  그건 책이나 영화와 같이 대량으로 복제되고 판매되는 서사예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러니까 오직 연극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공연이 녹화되거나 온라인 생중계로 대체되면서, 연극만이 갖고 있던 고유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p289 “ (예술영화를 본 후) 내가 본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이에 대해 쉬이 말할 수 없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문득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일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p327 “ [음소거 해제] 귀를 찢는,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눈물이 핑돌게 하는, 가슴이 무너지게 하는, 목이 메어 말문이 막히게 하는, 할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아직 죽지 않은 닭들의 울부짖음. “

p328 “ 우리는 빛과 함께 죽었다. 썼다가, 모조리 지워버린다….. 인간의 말로 만든 문화, 인간의 말로 지은 문학….. 오직 인간만을 위한 문학…..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문학. 망각의 문학. “

p335 “ 죽음이 너무 많았다. 죽음이 너무 많아서 죽으인가보다 했다. 죽음이 너무 많고, 죽음이 여전히 너무 많아서 여전히 죽음인가보다 했다. 죽어가다가 죽음. 죽음이 너무 많아서 나도 죽나보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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