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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허송세월

by 기시군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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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김훈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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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님의 에세이는 계속 챙겨 읽는 편이다. 처음엔 그의 글 맛을 즐기다가, 언제 부턴가는 먼저 늙어가는 선배님의 아우라를 느끼려 책을 읽는다. 이뻤던 여배우가 세월을 원망하며 얼굴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 없어진 주름에 자기는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보는 이는 위화감을 느낀다. 가끔 여배우 중에도 손 안대고 늙어감을 같이 보여주는 이가 있다. 김훈작가님이 그렇다. 서늘하고 날카로움은 단어의 칼날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늙어가며 느끼는 회환과 사유는 깊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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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서문의 제목은 ‘늙기의 즐거움’이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와 있는p7’ 늙음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술과 담배, 그리고 그의 병 이야기 안에 삶에 대해 그리 초조해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 하나 싶다만, 그것도 정확하진 않다. 

그가 병원에 가면 간호사들이 자꾸 ‘아버님’하고 부른단다. 그 간호사에게 ‘딸아’ 라고 부르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궁금해한다. ☺️ 병원은 늙음이 불러오는 필연적인 장소이다. 수치화할 수 없는 노화와 고통을 개량해서 처리하는 병원에서 세월보다, 저녁에 노을을 들여다보고 있는 ‘허송세월’이 그에겐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관능’이라 시간이라 한다. 

그는 인쇄된 자신의 글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글 잘쓰시는 양반이 자신의 글에서 발견하는 과장과 단정적 어조와 허접한 형용사와 부사는 뭐란 말인가.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글쓰기에서 평생을 글쟁이로, 우리가 보기엔 ‘장인’으로 살아온 이력을 느낄 수 있다. ‘’ 가난함’을 ‘빈곤’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p147 ‘라는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무게는 부사나 형용사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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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산소를 정리하고, 더이상 집안 제사를 없다 선언하는 노인네. 그것을 ‘결박을 푸는 p57’ 일이라 말할 수 있는 어른, 시장 ‘대중식당’에서 몇천 원짜리 밥값을 놓고 없는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지식인이 작가 김훈이다. 

작가를 통해 듣게 된 가슴아픈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가난한 가족 이미 3명의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 태어난 2명의 아이(아마 쌍동이였나보다)를 살해해서 냉장고에 4년이나 보관하던 엄마가 있었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남은 아이들의 밥거리를 걱정하던 엄마. 작가는 사체가 보관된 냉장고를 매일 열어서 남은 아이들의 밥을 챙겨 왔을 엄마의 심경을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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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형을 받은 젊은 엄마들 두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할 3명의 남은 아이들 두고, 작가는 ‘세계와 인간의 영원한 불완전성 p285’를 말한다. 법치국가로 정의된 우리 사회의 참혹한 현실, ‘불완전한 세계 위에 지옥 p284’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소망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노작가는 말한다.

그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더 많이 맑은 정신의 작가님의 글을 보고 싶다. 진심으로 건강을 기원한다. 🙏

✍ 한줄감상 : 노인들, 그리고 언젠가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모두를 위한 소중한 에세이.

덧,
이번에 보니, #평산책방 에서 선정한 이달의 책에 뽑혔다. 아마 문통도 비슷한 연배의 김훈작가의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흐뭇하다. ☺️

p8 “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이것은 속수무책이다. “ 

p15 “ 소주는 아귀다툼하고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이 아수라의 술이다. 소주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소망과 좌절을 멀리 밀쳐 내고 또 가까이 끌어당겨서 해소하고 증폭시키면서 모두 두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 

p17 “ 내가 즐겨 마신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위스키를 몇 방울 목구멍으로 넘기면 술은 면도날로 목구멍을 찢듯이 곧장 내려간다. “ 

p36 “ 고통은 경험될 뿐 말하여질 수는 없었고 눈금으로 표시할 수도 없었다. “ 

p38 “ 단어들도 멀어져 간다. 믿고 쓰던 단어에서 실체가 빠져나가서 단어들은 쭉정이가 되어 바람에 불려 간다. “ 

p92 “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 

p128 “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 보다 사물과 사람과 주변을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 “ 

p129 “ 인간은 짧은 줄에 목이 매여서 이념, 제도, 욕망, 언어, 가치, 인습 같은 강고한 말뚝에 묶여 있다. 짤븐 줄로 바싹 묶여서, 괴로워하기보다는 편안해하고 줄이 끊어질까 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  

p135 “ 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쓸 때 주어와 동사의 거리를 되도록이면 가까이 접근시킨다. “ 

p144 “ 형용사와 부사는 그 단어가 수식하려는 대상을 표현하지 않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주관적 정서나 감각과 선입관을 표현한다. “ 

p163 “ 명품 핸드백이나 고가 자동차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은 손’의 작용은 자유와 조화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4천 원이나 5천 원짜리 밥을 먹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은 몽둥이’이거나 ‘보이지 않은 쇠사슬’이다. “

p297 “ 의견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듣기의 헛갈림은 시작됩니다. “ 

p309 “ 꽃 냄새가 향기이고 똥 냄새가 악취인 것은 아니다. 냄새에는 미추가 없지만 거기에 길들여진 인간의 고정관념은 유전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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