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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활자잔혹극

by 기시군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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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복간할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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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표지다. 많은 활자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 자루의 피 묻은 칼. 모름지기 책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활자 때문에 살인 벌어진다니 뭔가 궁금증을 자아내지 않나? 난 그랬다. 😅 특히나, 한참 미스터리에 빠져있을 때, #미야베미유키 여사의 책을 많이 내던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절판된 작품 중에 의미나 재미를 담은 작품을 골라서 낸 복간본이라니….. 일단 이 정도면 지갑은 쉽게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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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보자. ‘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범인과 피해자, 그리고 그 이유부터 명기하고 시작하는 미스터리소설이다. 다음에 남은 건 ‘왜’ 일 뿐이다. 한 권의 소설은 온전이 그 ‘왜’를 따라간다. 주인공 유니스는 부유한 커버데일 가문에 입주 가정부로 들어온 여성이며, 문맹이다. 재혼한 커버데일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며, 친절한 사람들이었으며, 막내딸 대학생 멜린다는 예쁘고 명랑했고, 배다른 아들 자일스 혼자 책 읽은 것을 좋아하는 사춘기 남자아이였을 뿐 누구에게 폐를 끼친 적이 없다. 이 네 명이 유니스의 총에 한 명씩 죽어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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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쾌하게 읽을 책은 아니다. 하긴 사람 죽어나가는 과정, 그것도 좋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이 유쾌할 것은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의 단초를 제공하고, 비록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굳이 일가족 몰살이라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문맹(아니 하나의 사회적 기능으로 치환해보자)’이 한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압력,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과정을 풀어냈다는 점이, 이 소설을 다른 일반적인 장르소설과 차별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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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소설가 #장정일 의 평론이 실려있다. 그는 책을 읽지 못함이라는 기능적 결함이 어떻게 인격 형성에 문재를 야기하는 지의 문제와 피해자 중 하나인 독서광 자일스의 대비를 통해, 책만 들고 파는 독서광의 문제점을 같이 꼬집는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진단한다. 더 공감이 되는 평은 #김상욱 교수의 멘트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 속에서 그렇지 않은 것은 혐오를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굴욕과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 혐오의 시대에 의미 있는 책이라 평가한 부분에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모두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혐오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아니, ‘우리’에게만 있어야지 남들에게까지 있어서는 존심상한다는 마음이 칼날이 되어 날아다닐 수 도 있다. 예전에 실수를 한적이 있다. 낯선 이와의 미팅에서 스몰토크를 한답시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길래 몇 학번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어색해하며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상대의 답변을 듣는 순간, 나의 무지와 무신경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던 경험. 그 이후로는 학번은 물론 나이도 묻지 않고 내 정보도 잘 알려주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아무튼, 나름 속도감 있게 조여가며 읽는 재미와 생각할 꺼리를 준 책이라 나쁘지 않았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해도, 처음에도 말했지만 표지가 이쁘면 자잘한 불만은 다 사라지는 성격이라 만족도는 높다. ☺️

✍ 한줄감상 :  원인과 결과의 전복적 서사가 특이한 미스터리 소설.

p7 “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뚜렷한 동기도 치밀한 사전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전적 이득도 안전 보장도 없었다….. 그녀의 뒤틀린 마음 한구석에서도, 어떤 이득도 없으리라는 생각은 줄곧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이자 공범이었던 이와는 달리,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20세기 여성으로 가장한 원시인이라 생각하면, 그녀는 극도로 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

p74 " 그녀는 활자로  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p85 " 현재에만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존재였다. 그녀에게는 당장 저녁 식사가 오 분 늦는 사태가 십 년 전에 겪은 크나큰 슬픔보다 더 중요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 

p141 “ 각자 속으로 상대의 모습이 바보 같다고 여겼지만, 이 때문에 사이가 소원해지지는 않았다. 우정이란 때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확신할 때 가장 돈독해지곤 한다. “ 

p170 “ 사랑에 빠진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 

p246 “ 알 수 없는 어떤 작용에 의해, 유니스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활자로 바뀌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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