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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일인칭 가난

by 기시군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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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가난 #안온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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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주변 몇 명에게 좋은 책이라고 소개를 해봤다. 내용에 가슴아파 오히려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다. #뉴스공장 에서 #오티움 #정혜승 대표가 털보아저씨를 설득하기 힘들어 한 이유를 체감했다. 어떤어떤 부분이 훌륭하다는 대표의 말에 털보아저씨는 계속 세일즈 포인트를 찾는다. ‘사람들은 이렇게 가난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는 요지. 일단, 모든 사람은 아니라는 취지에서 구매했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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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간략하게 대학 때 까지만 생각나는데로 정리해본다. 물론 대학 이후라고 저자에게 햇살이 내려 안기진 않는다.

맹인이며 중증 알콜중독으로 술값으로 작은 주공아파트의 전세금마저 털어먹는 아빠는 술값을 내어 놓으라고 엄마와 저자에게 빈병을 던지며 패악을 부린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진 엄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많은 알바를 할 수도 없다. 수급대상자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소액의 알바를 하면서 그 돈을 아껴 딸의 학원비를 댄다. 공부 밖엔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본능적인 생각에 열심히 공부한 저자는 합격한 서울의 대학을 포기하고 전액 장학금 조건으로 대구의 대학교에 입학한다. 집에서는 잠시 탈출을 하지만, 단 한푼의 지원도 없이 생활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결코 편하지 않다. 장학금 유지를 위한 학점을 맞춰야 하고, 기숙사비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에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그런 그녀는 장학금 수혜자로 학기당 180만원을 학교에서 지원받는 데, 그 돈은 모두 엄마에게 보낸다. 그녀의 주식은 삼각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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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어 버린 삶의 이야기. 자신의 가난을 받아드릴 수 없는 애인의 집안 때문에 연애조차 힘든 삶의 이야기. 마음이 가난한 것이 진짜 가난이라 말하는 먹물들에게 ‘지갑이 허한 게 진짜 가난p98’이라는 작가의 뼈에 사무친 이야기. 궁상맞은 이야기만 있을까? 아니다. 이 책의 힘은 가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너무 심한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고 꾸려 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학원 강사 시절, 글 잘쓴다는 소문에 원장 주선으로 입사지원서, 대학입시 소개서 대필 요청들이 꽤 많이 들어왔다. 유혹을 느끼게 하는 금액,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대필을 하지 않는다. 작가가 꿈인 사람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오직 자기 생각에도 정신없을 것 같은 환경이지만, 그녀는 쿠팡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고, 작은 실천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마음을 준 반려묘 ‘단이’가 병들었을 때, 수술비용이 480만원이나 든 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자는 망설임없이 고양이를 치료하기로 한다. ‘단이와 가난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p142’ 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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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가난을 파는 세일즈 포인트는 뭘까? 자기계발서는 돈 주고 사는 꼰대들의 충고라는 말이 기억난다. 부자를 파는 책은 넘치고 세일즈 포인트는 명확하다. 너도 따라하면 부자가 된다다. 가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청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 조차 그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은 못한다. 당연하다.

다만 최소한 이 책에 대한 어필에는 한마디 거들고 싶다. 저자의 유머감각, 감각적인 글쓰기가 번뜩이는 책이다. 지지리 궁상이 아니라 센스있는 묘사와 비유, 발랄한 대화 등이 책에 다가가기 힘든 무게를 덜어준다. 예언하건데 저자 안온은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되어 세상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김애란 작가의 느낌일 것 같다. 기대하고 기다려 보련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분들도 이 책을 한권 씩 사서 읽어보시길 진심으로 권한다. 사랑에만 아웃오브사이트 아웃오브마인드가 있는게 아니다.  😎

✍ 한줄감상 : 센스있고 감각있는 글쏨씨로 쓰여진 이 시대의 가난 보고서.

덧, 하나
기초수급생활대상자는 전국민의 2.4%가 된다. 적은 숫자라고? 23년 기준 245만명이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

덧, 둘
책 후반부에는 실제 가난한 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는 나라의 제도나 시스템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담아 놓았다. 비슷한 처지의 젊은 청년들에게 실용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p18 “ 눈빛은 미간에서 시작했다. 억지로 웃는 입꼬리로는 숨 길 수 없는 가난에 대한 혐오가 서린 미간, 눈이 먼 아빠를 부축해 행정복지센터에 가는 날마다 진지함을 가장한 그 미간을 보았다. “

p19 “ 지금도 나는 재해 지역이나 쪽방촌에서 생수며 연탄, 반찬 등을 나르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보면 끔찍하다 새것이어서 유난히 빨간 목장갑과 일부러 묻힌 듯 재가 거뭇거뭇한 기름진 얼굴들, 그들이 동정마저 전시하는 동안 가난한 이들이 죽고 더 가난한 이들이 태어난다. “

p27 “ 오래도록 남게 된 아이들은 고통의 서열을 셈하는 데에 점점 익숙해졌다. 전세 사는 아이가 월세 사는 아이를 깔봤고, 아파트 평수로 최고의 상태와 최악의 처지를 따졌다. 악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조종한 결과가 아니었다. 주위의 평범한 어른들을 보며 자연히 터득한 아이들 나름의 ‘지혜’였다. “

p40 “ 시험을 보고 멍한 상태로 닭집에 가서 닭을 나르면서도 생각했다. 죽기야 할까. 아. 죽고 싶다. 아니지, 지금 통장에 무려 200만원이나 있는데, 죽어도 계약한 자취방에서 죽어야지. “

p51 “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100여 명이 세탁기 두대로 빨래를 돌렸다… 쓰레기통 근처에서는 365일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까꿍 놀이를 해댔다. “

p86 “ 할머니랑 아버지가 자살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죽고 싶지만 죽지 않아요. 이런 것도 아니고, 매일 일하는데 자꾸만 가난해질 것 같아요. 20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더니 강박이 있어서요. “

p91 “ 애인들과 겉으로는 사랑싸움을 했지만 속으로는 계층 갈등을 겪고 있었다. “

p98 “ 연애 옹호론자들은 주창할 것이다. 자취방에서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한 것이 연애다! 하지만 애인과만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취방을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지지리 궁상’과 ‘지난한 가난’은 전혀 다른 것이다. “

p109 “ 아빠는 4,800만 원을 남겼다. 빚으로. “

p119 “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감정적 표출을 하기 전에, 그것을 일단 해결해야 했기에 감정과 유리된 선택의 순간을 끝없이 마주하느라 남의 일처럼 자신의 일을 판단하게 된 거예요……. 고생했어요. “

p128 “ 무기력했다. 나는 새는 중이었다. “

p140 “ (고양이) 이제는 내 몸 어디에나 꾹국이를 하고 아무 때나 골골송을 부르고 꼬리를 펑 부풀리며 뛰어다니는 캣초딩이 되었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 아이가 앙증맞게 크는 것을 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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