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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작별들 순간들

by 기시군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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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순간들 #배수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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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집은 ‘작별’보다는 ‘순간’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녀는 과정보다 자신에 마음에 무언가 들어오는 ‘순간’을 포착해 내는 재능으로 가득한 작가다. 책의 배경은 베를린의 작가가 거주하는 낡은 집. 문명의 이기들과 떨어진 채 조용히 책을 읽고 사색하는 과정에 떠오르는 ‘순간’들을 잘 낚아채어 책 안에 담았다.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빛나는 ‘빛’ 자체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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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원에 대한 글을 청탁 받았을 때, 작가는 비틀거린다. ‘나는 길이 보이지 않는 숲에서 방향을 잃은 채 오직 낙엽을 헤치며 가는 중 p40’이며 그것이 자신이 글쓰기이며 자신의 글이 읽히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중이라 말한다. 이 아이러니 자체가 그녀다움으로 새겨져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글쓰기로 자신의 글쓰기를 표현하는 아래의 긴 문단을 옮긴다. 

“ 나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지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압도적인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 심지어 매혹적이러가나 독특하거나 소름 끼치거나 아찔한 글도 아니라고, 문장 단위로 이루어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며, 개념과 철학으로 쓰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체의 통일과 조화의 글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연속저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 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 무엇도, 심지어 내요이나 아름다움조차도 완성하거나 구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파편이었다. p134 “

아름다운 문장 속에 들어가 있는 ‘일반문학’에 대한 거부선언의 불협화음이 그녀의 문학이다. 그녀는 자신의 문학이 ‘속삭임’이라 표현한다. 글이 호흡하는, 파편화되는 문장들의,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감정과 사유의 속삭임, 그것이 작가에겐 문학이다. ‘고요’와 ‘회색’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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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피하고 문장이 주는 관념의 변화과정을 즐기는 태도, 개인 내면은 우주 전체와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한 자신의 글쓰기 정의. 매번 배수아에 빠져들기 힘들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에게 문학은 ‘이야기’에서 서사를 해체하고자 싶어하며, ‘시’보다는 구체적이고 싶은, 다른 작가와는 차별화된 욕망의 결과물이였고, 난 그녀의 글쓰기 태도는 인정하지만 ‘좋아할 순 없었’ 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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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녀의 젊은시절이야기를 기억한다. 여대에서 아마 이과를 전공했을 것이다. 흔해빠진 문학청년도 나이었고, 책 읽기를 그리 즐기지도 않았다고 했다. 타자연습을 하다가 쓴 소설로 등단을 했고(즉, 천재작가다 😂) 90년대 이후 언제나 시대의 비주류에서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녀의 성취와 존재의미는 소중하다. 이 책을 통해 그녀의 글솜씨에 감탄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다만 그녀의 싫어하는 문학적 태도의 ‘효용성’이 이 땅엔 더 많이 필요하다는 나의 ‘욕망’ 때문에 그녀와 더 가까워지긴 어려울 듯하다. 독일에서 건강히 작품활동을 계속하길 빈다.  

✍ 한줄감상 : 글 쓰는 ‘순간들’의 문장들이 모여 문학이 된다. 

덧, 하나
뜻밖의 ‘장르소설적’ 반전이 에필로그에서 서술된다. 의도적 장치였다는 걸 이해했고, 효과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배수아답다. ☺️

덧, 둘
그녀의 글을 읽다가 그녀의 번역이 궁금해졌다. 두툼한 번역서 한권을 주문해 놓았다. 번역가 배수아는 한 번 더 만나볼 생각이다. 

p13 “ (뒤라스의 ‘연인’) 내가 삼십년 전 모국어로 읽었던 당시에는 이 책이 내용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그러므로 과거에 내가 읽은 것은 다른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썼다…. 아노(영화 연인의 감독)의 영화는 그 작품에서 언어와 시poetry가 빠졌을 때 문학의 줄거리가 얼마나 쉽게 포르노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 

p21 “ 하나의 작품은 다른 작품의 파동을 이룬다. “

p30 “ 나는 플롯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데, 그건 내가 플롯을 해체하는 글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p38 “ 밤새도록 나이팅게일이 운다. 잠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

p42 “ 정원에 비가 개리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 

p55 “ 남쪽 지방의 빵은 햇빛의 맛이 난다고 나는 말했다. “ 

p68 “ 이 세상은 오직 한 마리 죽은 개구리의 우주였다. “ 

p82 “ 오래전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온 편지….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 

p101 “ 느낌을 무엇인가로 향하게 하며 그것의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은연중 믿게 만드는 속삭임. 마침내 그것을 내면에서 유발하는 속삭임. 그리하여 지금 햇살 가득한 유리창에 첫 번째 빗방울이 떨어진다. “ 

p110 “ 나는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은 긴 여운을 남기며 물위로 퍼져나 갔다가 어느새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 

p140 “ 게르하르트 마이어는 썼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오직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60 “ 비유하지 마. 하고 나는 나에게 말한다. 비유하지 말고 설명하지도 말고 성찰하려 들지도 마.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저절로 드려내 보이는 것들, 언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현상성. 오직 그것들에만 집중해. “

p211 “ 벌거벗은 진실은 지루할 뿐이죠. “ 

p228 “ 나는 사실 한 권의 책을 마지막까지 쓴 일이 결코 없으며, 항상 다음 책을 쓰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미완으로 남겨두었다는 느낌에 다다르곤 했다. “ 

p235 “ 내 글쓰기는 죽은 자들로부터 유래했음을 알아차린다….. 사신들 속의 모든 것이 죽었고, 그럼으로써 반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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