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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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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깬 새벽, 이 책을 들었다. 맨부커상을 받을 때도 다시 읽지 않았으니 십 년도 훨씬 지난 재독이다. ‘작별’이나 ‘소년’을 재독 할 용기는 없다. 그저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그녀와 천천히 죽어가던 언니로 기억되는 그들의 삶을 다시 살펴보는 것으로 작가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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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채식을 선언한 영혜와 그녀의 몽고반점에 영감을 얻고 신체적, 예술적 욕망에 떠는 형부. 그리고 언니이자 그의 아내인 인혜. 이 세 명은 무해한 사람들이다. 그저 영혜는 자신의 살아왔던 세월의 기괴함에 깜짝 놀라 급하게 나무가 되려다 스스로를 해친다. 남자는 영혜나 인혜를 해치고 않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도덕’이라는 세상의 틀에 차이고 만다.
가장 무해한 사람은 인혜로 보였다. 맞다 무해한 사람이다. 그저 작은 후회로 그녀처럼 무해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픈 위치에 서버리고 만다. 인혜처럼 영혜나 그도 ‘ 지쳤고, 삶이 넌더리났고, 삶을 담은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p84’는데 ‘정상적인’ 삶을 연기하기에 익숙해져 버린 그녀에겐 ‘연민과 불가해함’만을 남았을 뿐이다.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인혜에겐 베란다 햇살과 식물들 밖에 없었다. 무난한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던 속물남편도 베트남참전용사로 살인이 자랑꺼리인 아버지. 말 잘 듣고 무난 무난하게 ‘남의 살점’을 먹고 살아와 어른이 되었지만 그녀에게 사랑은 없다.
그는 어떤가. 오월의 신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의 의식을 가진 예술가였지만, 이제는 아무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능한 중년이다. 아내를 존경했지만 사랑할 순 없었다. 예술적 영감과 성욕이 얽힌 ‘결과물’에 달려들 뿐이다. 그 안에 깨달음은 있을지 몰라도 사랑은 없다.
인혜는 자신의 견딤의 파트너로 그를 선택했다. 사랑이 되었을지 모른다. 사랑은 과정이니.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그와 사랑을 만들어 갈 순 없다. 모든 이에게 상냥하듯 모든 가족에게 성실했고 착하게 대하며 그녀의 내면은 조금 더 차갑게 멍들어 간다. 그나마 그녀를 지키는 유일한 사랑은 어린 아들 ‘지우’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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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인혜’의 삶을 살아간다.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제거된 시간,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 p196 ‘ 인혜처럼 우리는 속 안의 멍울을 숨기며 거의 달랑 하나뿐인 작은 사랑의 빽을 믿고 일상을 견디고 있다. 사실 그 사랑 역시 언제 휘발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정함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삶을 채워가기 위해서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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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녀는 영혜의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p191’ 라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 그녀 자체도 겨우 살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기껏 할 수 있는 게 자기 몸 하나뿐인 동생에게, 그녀는 할 말이 없다. 구조적 인간소외, 욕망과 규범에 대한 알레고리, 폭력에 대한 서정적 고발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 소설은 내겐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만 들린다.
부모, 형제, 부부, 연인 모든 관계에서 사랑은 강요되지 않는다. 그저 관계하며 만들어진다. 상대의 일상이 궁금해지며, 상대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이 오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싶어진다. 이걸 방해하는 이기심과 폭력앞에서 우린 약해진다. 하지만 이토록 작은 것들이 쌓여야 ‘사랑’은 지킬 수 있다. 관계, 위치 만으론 사랑은 없다. 다시 강조하면, 그 ‘사랑’ 역시 변하고 뒤틀릴 순 있다. 다만,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는 생존경쟁에 물질적 욕심에 식욕을 으르렁거리는 ‘동물’로만 살아갈 것이다.
✍ 한줄감상 : 당신은 잘 살아가고 있나요.....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p12 “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
p32 “ 저는 아직 진짜 채식주의자와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내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징그럽게 생각할지도 모를 사람과 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
p43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
p65 “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
p83 “ 그는 문득 구역질이 났는데, 그 이미지들에 대한 미움과 환멸과 고통을 느꼈던, 동시에 그 감정들의 밑바닥을 직시해나가기 위해 밤낮으로 씨름했던 작업의 순간들이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
p101 “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
p107 “ 사십 년 가까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찬란한 희열이, 몸속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흘러나와 자신의 붓끝에 고이는 것을 그는 침묵 속에서 느꼈다. “
p140 “ 그는 전율했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
p156 “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p161 “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
p167 “ 뛰쳐나가고 싶은 두려움과 싸워 이긴 것은 오로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였다. “
p175 “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
p191 “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
p197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 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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