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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이별의 왈츠

by 기시군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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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왈츠 #밀란쿤데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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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때문에 우울하게 연말을 보낼 수 만은 없다. 이번엔 재미있는 책이다. ☺️

#소설의기술 에서 쿤데라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작품이라는 언급 때문에 구매한 책이다. 명불허전, 가장 쿤테라스러운 스타일이 살아 있는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했다. 쿤데라가 말끝마다 붙이는 #키치 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로 넘어오기 직전 1972년도 체코에서 쓴 마지막 소설이라고 한다. 한판의 소동극에서 삶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묘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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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프럼펫 연주자 ‘클리마’는 어느날 전화를 받는다. 몇 달 전 시골 온천도시에서 있었던 공연, 들뜬 기분으로 파티에서 만나 원나잇을 즐겼던 상대 간호사 ‘루제나’로부터의 전화다. 클리마의 아이를 임신했고 낳겠다는 소식이다. 큰일이 났다. 그에게는 질투심이 심한 아름다운 아내가 있고 그녀를 사랑한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루제나가 중절수술을 받게 해야 한다. 아니면 파멸이다. 

사회주의 국가 체코는 중절이 쉽지 않다.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이것을 허가하고 시술해줄 의사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온천에는 불임치료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몽상가 의사 ‘슈크레타’가 있다. 그가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단 아마추어 연주자인 자기와 이 온천장에 공연을 다시 연다는 조건이 달린다. 마음 급한 클리마는 수락을 하고, 공연날 낙태 관련 행정업무를 처리해 주기로 한다. 약속은 지켜질까? 

기독교 신자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남편의 부정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클리마의 부인은 공연이 있다는 온천장을 몰래 찾는다. 거기서 초이성적 계시(?)를 통해 자기와 잔 남자들 중 아이의 아빠를 판단할 수 있다는 루제나와 우연히 스치기도 한다. 

전화를 받은 이후 5일간의 이야기다. 공간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야기는 추가 되는 인물들과 더해지며 스트레이트 하게 진행된다. 우연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사건은 불륜에서 죽음까지 넓어진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의 육체보다 고매하고 섬세함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믿는, 이제는 고국을 떠날 수 있게 된 오랜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야쿠프’로 보인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매혹되는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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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쿤데라는 주어진 질서에 대한 조롱을 멋진 코메디로 만들어 내었다. 대신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다. 탐하는 것은 존재하는 욕망, 해야 할 것은 주어진 질서, 이 비균질한 일상이 얼마나 #우스운사랑들 로 생성되지는, 자기 재능의 최고점을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처럼 쿤데라도 세상의 부조리함에 주목한다. 특히나 인간 또는 인간군집이 가지는 저열하고 잔인함, 그리고 저속함이 ‘서정적 가면p164’을 통해 가려져 버리는 위선적 상황에 몸서리를 친다. 논설이라면 주장으로 끝나겠지만, 소설은 이 얼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여야 한다. 서사는 딱 맞아떨어지며 이어진다. 다른 신념을 가진 인물들, 다른 욕망을 가진 인물들은 대화하며 섹스를 하며 논쟁을 벌인다. 인간에게 가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무엇인가. 욕망을 이끄는 실체는 무엇인가. 이어지는 질문들은 묵직하지만 쿤데라의 키치는 이 모든 질문들을 한없이 가벼이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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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 속이는 관계가 이 사회나 개인이 가지는 본질이라면,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일 것이다. 더 무서운 일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일 일 것이다.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그 가장 무서운 부분마져도 별일 아닌 듯 능청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내가 옳다고 좋아한다고 믿고 행동하는 ‘그것’이 과연 진짜일까 하는 질문은 독자의 몫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 한줄감상 : 카프카의 희극은 웃음을 주지 못했지만, 쿤데라의 희극은 정말로 웃긴다. ☺️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보길 바란다. 

p33 “ 그녀는 한 달 내내 클리마가 그날 어떤 여자와 만날 것인가만 생각했으며, 한 달 내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p44 “ 매일같이 잠에서 깨는 일이 하나의 작은 전기쇼크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냐고요? 매일매일 폭력에 익숙해져 가고 매일매일 기쁨을 잊어 가지요. “ 

p49 “ 여자를 유혹하는 거, 그건 어떤 바보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관계를 끊을 줄도 알아야 해요. 바로 거기서 그 사람이 성숙한 남자인지 알아볼 수 있는 거죠. “

p88 “ 클리마의 이 마지막 말에서 풍겨 나오는 슬픔은 그녀에게 달콤한 향기로 느껴졌다. 그녀는 마치 돼지갈비 냄새라도 맡듯이 그 슬픔의 냄새를 맡아 댔다. “ 

p116 “ 사실 올가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자신과 실제로 살아가는 자신으로 쉽사리 자아를 분리하는 그런 현대 여성에 속했다. “ 

p125 “ 범죄자와 희생자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건 바로 모든 희망을 버리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가씨, 그게 바로 지옥이라고 불리는 거야. “

p136 “ 모든 인간은 성년이 되는 그날 독약을 받아야 한다고 봐. 그걸 위해 엄숙한 예식도 거행되어야 하고, 자살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확신과 평온을 누리며 살기 위해 말이야. “

p151 “ 질서에 대한 욕구는 동시에 죽음에 대한 욕구다. 왜냐하면 삶은 끊임없이 질서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

p160 “ 난는 여인의 육체를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여인의 젖가슴이 우유 가방으로 바뀌는 걸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죠. “

p163 “ 과학과 예술이 사실상 역사 본연의 진정한 무대라면, 정치란 그 반대로 인간에게 전대미문의 실험을 가하는 폐쇄된 실험실이야. “ 

p168 “ 늙은이들이란 지나간 시절의 고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그 고통으로 하나의 박물관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대는 습관을 통해 식별된다. “

p190 “ 한 인간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 가는 것에는 질투만 한 것이 없다. “

p283 “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은 권태를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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