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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대도시의 사랑법

by 기시군 202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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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작가의 #알려지지않은예술가의눈물과자이툰파스타 를 즐겁게 읽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다음 책을 골랐다. 경쾌하고 감각적인 퀴어소설가의 출현이 반가웠고 이 연작소설에선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연작소설이다. 물론 소설적 장치겠으나 거의 작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사랑이야기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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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구분된 작품들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주요 등장인물 3명의 이야기를 할까한다.

- 재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헤테로섹슈럴리티 여성 친구다. 화자의 대학동기로 취향 및 성향이 너무 잘 맞아 거의 불알친구(?) 느낌으로 동거를 하기도 한다. 각자의 연애활동에 대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이. 아주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이다. 그녀가 피우는 말보로 레드의 맛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내 폐를 지저버릴 것 같은 강한 맛.

- 형

철학강좌에서 우연히 만나 연예를 했던 과거 운동권 출신의 남자. 미제를 증오하는 것이 NL계열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자신이 게이임을 긍정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 및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청춘에서 이런 연애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보편적이다.

- 규호

클럽 바텐더로 착하고 성실한 남자. 화자가 가장 사랑한 인물이다. 물론 보편적인 사랑처럼 투닥거리기도 하고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우리시대의 '좋은'연인의 모습. 연애상대의 약점까지 같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각오가 있는 사람. 마찬기로 한때 우리는 이런 연애상대를 또 만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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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이라지만 한편의 장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연속성이 있다. 각 작품별 상황설정이 달라짐없이 그대로 진행되며 그 덕분인지 빠르게 잘 읽힌다. 속도감있는 필치는 여전했고, 드라마로서의 매력도 높아 인물들간의 사건과 반응에 궁금해하며 빠르게 책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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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책이라 이 책을 들었을때 나는 '퀴어'소설이 아닌 퀴어'소설'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퀴어'소설이었다. 연애대상에서 남자를 빼고 여자를 넣고 소설을 읽게되면 그저 평범한 연애청춘물이 되어 버린다.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힘들게 보낸 '청춘'에 대한 한풀이구나. 겪었던 상실과 아픔들, 상처들을 보다듬고 더 넓은 세계로 가기위해 필요한 기록들이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적 장치들 안에 흐르는 정서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퀴어’ 자체를 벗어난 작가가 될순 없을 것이다. 다만 ‘성정체성’ 큰 틀안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가 궁금해 지는 작가다.

덧,

최근작 #1차원이되고싶어 가 출시된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어떤가 모르겠다. 읽어야 할 책이 밀려있어 일단은 대기중에 두어야겠다.

p43"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통해 삶의 여러 이면들을 배웠다. 이를테면 재희는 나를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 좆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화는 언제나 하나의 철학적 질문으로 끝났다."

p66"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p90"나는 그런 외로운 마음의 온도를, 냄새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p153"그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나와 뭔가를 맞출 생각이 없었고, 다만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밤마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어린애인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나와 몸을 섞는 일을 즐거워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바꾸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으나, 불행히도 나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바뀌는 성격이 아니었다. "

p169"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

p228"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 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p280"역시나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하긴 모든 일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에 크게 쓸모 있는 일이 없는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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