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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by 기시군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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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장그르니에 #민음사 #김화영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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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이며 카뮈의 스승으로 유명하다는 장그르니에의 책을 처음 읽는다. 우연이 알게된 소문난 맛집. 까칠한 내 입맛에 맞는 정찬 일지 궁금해 하며 책을 읽었다. 일단 새로나온 개정판 전집의 첫권으로 책은 이뻐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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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아주 천천히 세상을 걷는다. 느리게 걸으며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도 아낀다. 그에게 섬은 멀직히 혹은 스스로의 가슴 가운데 잘 숨어있는 무엇이다. 진실일지 도피처일지 지양점일지 모르겠다. 아끼는 걸음만큼 말도 아낀다. 하지만 ‘ 정확하면서도 꿈결 같은 … 가벼운 언어p14’는 꼭 음악처럼 말하고 싶어한다. 큰이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로, 내지르기 보다는 흘리고 싶어한다.

이런 작가에게 겁이 많다는 것이 약점이 될까? 작게 존재하는 것이 소중한 만큼 ‘존재하지 않는 것에 생각이 미칠 때p41’ 작가는 무섭다. 두려움을 잊게 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것들의 ‘행동’이다. 거대한 사상의 체계 안에서 의미를 찾기보단 고양이 같이 소박한 삶의 영위를 위한 단순한 ‘행동’이 작가에겐 더 의미있게 다가간다. 책 중 ‘고양이 물루’ 편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관조, 거리를 두면서도 귀여운 고양이 물루에게는 관심과 애정의 손길을 내민다. 손끝에 닿는 고양이의 등털, 쓰다듬으며 올라오는 따스한 느낌. 작가는 삶의 의미를 이러한 작지만 따스한 생명에서 찾은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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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뜬금없지만 ‘부질없는 것에 박식p61’을 지양한다는 점에서 왠지 공감을 해 버렸다. 하지만 이어서 말하는  ‘인간의 삶이 한갓 광기’라는 점엔 동의할 수 없다. 그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부질없음이 언젠가 ‘존재하지 않음’이 될 인간에 대한 동정일수도, 혹은 같은 종에 포함되어 사라질 자신에 대한 애정이든, 글 전반에 걸친 스며있는 ‘황폐함’은 매력적이지만 위험하다.

견유학파. 세련된 시니컬은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한다. 아름다움은 침묵속에서 만들어진다. ‘침묵을 완전히 표현할 줄 알았던 사람은 램브란트뿐p102’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이어지는 함축되고 숨겨놓은 진실의 ‘시어’들을 더 들여다 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순간, 번역된 문장들보다 불어 원어로 읽어 싶다는 불가능한 욕심에 마음이 흔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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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도 있다. ‘휴머니즘은 그리스 문명의 산물p143’ 이라는 믿음을 표출하며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미천함에 대한 혐오표현은 그가 서구중심의 닫힌 철학 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독의 위험성도 있으니 단정하긴 어렵다. 아무튼, 소문난 맛집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왠지 지중해 어느 섬에서 양념 맛이 거의 나지 않는 자연식을 내어주며, ‘이것이 음식이야’라 속삭이는 느낌을 준다. 정갈한 문장과 매력적인 단어들의 조합으로 사람을 짧은 여행에 오르게 한다.

삶이 무겁고 단조로운 어느날은 저자에겐 ‘시가 없는 날, 시가 없는 세상’ 으로 보인다고 한다. 언제나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p174’를 찾은 작가는 어디를 가서든 그곳에 가서도 적당한 돌덩이 뒤에서 스스로를 ‘격리’하며 그저 햇살을 즐기는 ‘디오게네스’의 삶을 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한줄 감상 : 카뮈의 서문이 가장 마음에 든다. MSG에 길든 내 입맛엔 한번 방문으로 충분한 맛집. 😄

p11 “ 펼쳐 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 안에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어조를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

p60 “ 옛날에 레닌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그 접촉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78 “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

p96 “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고 할 수 있다.

p140 “ 우리들 그리스적이며 기독교적인 문명과는 반대되는 모든 것, 우리에게,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며, 나도 어쩌면 인도 사람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모든 것도 그것이 정신으로 하여금 그의 가장 귀중한 인연들로부터 해방되고 정신이 이성의 밖으로 도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열광적인 공감이 솟아오른다. “

p161 “ 탐구 같은 것은 있지도 았다. 왜냐하면 대상은 매 순간 발견되고, 하나의 사실이 여러 사실들 사이의 어떤 관계를 대신하듯이 현실이 진실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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